중대재해는 사고가 아니라, 예고된 결과다

중대재해는 갑작스럽게 발생하지 않는다. 산업현장, 건설현장, 공공시설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누적된 위험이 일정 지점을 넘을 때 비로소 ‘사고’라는 이름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중대재해를 불운한 사고로 설명하려 한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가장 쉬운 방식이다.
우리 사회에서 중대재해는 오랫동안 개인의 부주의, 현장 관리자의 미흡, 혹은 특정 기업의 일탈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른다. 중대재해는 특정 업종이나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유사한 형태로 반복된다. 이는 중대재해가 개별 현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제도적 실패의 결과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사망 사고는 완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이는 법이 불필요해서가 아니라, 법이 예방 중심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은 처벌을 통해 경각심을 주는 도구일 수는 있지만,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는 시스템을 대신할 수는 없다. 처벌은 결과에 대한 대응일 뿐, 예방 그 자체가 아니다.
현재의 중대재해 대응 구조는 사고 이후에 집중되어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 조사, 책임 규명, 처벌 논의가 이어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질문 “왜 이 위험은 사전에 관리되지 않았는가”는 반복적으로 놓쳐진다. 이는 우리 안전정책이 여전히 사후 대응 중심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문제적인 것은 위험의 하청화와 외주화 구조다. 위험한 작업일수록 가장 취약한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안전 투자와 관리 책임은 분절된다. 이 구조에서는 누구도 전체 위험을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이 쪼개질수록, 예방은 작동하지 않는다.
중대재해 예방 정책의 출발점은 명확해야 한다. 중대재해는 ‘사고’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위험의 실패라는 인식 전환이다. 위험을 알고도 방치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다. 이제는 묻지 말아야 할 질문이 있다. “누가 잘못했는가.” 대신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왜 예방되지 않았는가.”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 작동하는 구조다.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제거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때 비로소 중대재해는 줄어들 수 있다.
중대재해는 사회의 안전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다. 반복되는 중대재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전관리 시스템의 성적표다. 이제 그 성적표를 외면할 수는 없다.
[한국재난안전저널 박승준 기자 / redpsj2@kods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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