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예방, 왜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제도와 지침은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 법률, 시행령, 고시, 매뉴얼까지 더 이상 “기준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는 반복된다. 이는 제도의 부재가 아니라,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의미한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문제는 안전관리의 형식화다. 많은 현장에서 안전은 ‘실천’이 아니라 ‘서류’로 관리된다. 위험성 평가는 점검표 작성으로 대체되고, 교육은 서명으로 완료된다. 이러한 방식은 사고 발생 시 책임을 면하기 위한 절차로는 기능할 수 있지만, 위험을 제거하는 도구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안전이 문서가 되는 순간, 현장은 보이지 않게 된다.
특히 위험성 평가 제도의 운영 방식은 중대재해 예방의 핵심 취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위험성 평가는 작업 변화와 환경 조건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갱신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최초 작성 이후 반복 복사되는 경우가 많다. 현장의 위험은 변화하지만, 평가는 고정되어 있다. 이 괴리 속에서 예방은 작동할 수 없다.
또 하나의 구조적 문제는 시간과 생산성 압박이다. 많은 산업 현장에서 안전은 여전히 ‘시간이 남으면 하는 일’로 인식된다. 공정 지연, 비용 증가, 일정 압박 앞에서 안전 조치는 후순위로 밀린다. 이는 개별 관리자나 노동자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생산 중심 구조 속에서 안전이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문제다.
관리 감독 체계 역시 한계를 드러낸다. 점검은 사전에 예고되고, 현장은 점검에 맞춰 ‘정리’된다. 이 과정에서 실제 위험 요소는 가려지고, 점검은 형식적 절차로 전락한다. 감독이 예방 기능을 상실할수록, 현장은 점검을 통과하는 법만 학습하게 된다.
중대재해 예방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예방을 요구하면서도, 예방이 가능하도록 시간·권한·책임을 함께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 관리자에게 책임은 부과되지만, 작업 중지를 결정할 권한은 제한적이다. 노동자에게 안전을 요구하지만, 위험을 거부할 수 있는 실질적 보호는 부족하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현장이 안전을 지키지 않는가”가 아니라, “현장이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구조인가”를 물어야 한다. 중대재해 예방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안전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현장의 위험을 실제로 반영하는 실효성 있는 평가 체계.
둘째, 작업 중지를 포함한 현장 권한의 실질화.
셋째, 안전을 비용이 아닌 필수 공정으로 인정하는 정책 신호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중대재해 예방은 구호에 머물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는 현장에서 발생하지만, 그 원인은 정책과 구조에 있다. 현장이 변하지 않는 이유를 현장에서만 찾는 한, 사고는 반복된다.
[한국재난안전저널 박승준 기자 / redpsj2@kods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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